칼럼
잊음으로써 새겨지는 기억의 시편 - 탈력이라는 기억의 시편
많이 모았다.지식, 직함, 기술, 정답."갖는 것"이 세상을 여는 열쇠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것들은 점점 무거워져 빛이 아닌 그림자가 되어 어느새 숨통을 조여왔다. 그래서 나는 버리기로 했다. 버림으로써 보였다.잊어버림으로써 느꼈다. 몸은 잊지 않는다. 아니, 몸만이 잊은 척하면서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다. 힘겨움은 모순의 증거다. 생각이 이렇게 하라고 명령하고 몸이 그것을 부정할 때, 거기서 '힘'이 생긴다. 힘은 생각과 […]
디테일이라는 이름의 폭력, 그리고 기도 - 신은 어디에 머무는가?
한때 나는 우울증에 시달렸다. 그때 처음 알았다.'집착'은 때로 사람을 죽인다. 완벽하게 마무리했다고 생각했던 작품, 디테일까지 다듬었을 공간, 몇 번이고 되짚어보고 갈고 닦은 말........ 그 모든 것들이 자신을 조이는 올가미처럼 목을 조이고 있었다. "더 잘해라" "더 높게" "더 완벽해라" 그 목소리가 내면에서 들려온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자신을 깨뜨리기 위해 존재하고 있었다. '신은 디테일에 깃든다'는 저주인가, 구원인가? […]
선이 말하는, 색이 침묵하는 - 밀로와 아르퉁 사이에서
내가 호안 미로에게 끌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그 선, 그 색, 그 배치.볼 때마다 마음의 어딘가가 '풀려버린다'. 언어가 되기 전의 감정. 기억에 닿기 전의 풍경. 미로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인간의 원풍경이 떠오른다. 어딘가 어린아이의 낙서 같으면서도 우주적이고, 음악적이고, 시적이고, 초월 적이다. 미로 ─ 색채의 시, 감각의 원문 미로는 '선의 화가'로도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의 […]
"열정과 절대적 화합 - 칸과 미스, 그리고 무심탈력™"
루이스 칸과 미스 반 데어 로에. 이 두 건축가가 내 안에 남긴 것은 단순한 디자인 미학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방식'으로서의 구조의 문제이며, '존재 방식'으로서의 침묵의 무게다. 미쓰 ─ 절대적으로 정돈된 침묵 미스의 건축은 완벽하다.선, 구조, 비율, 소재, 빛.일체의 놀이와 감정이 배제된 채 고요함만이 지배하고 있다. 그곳에는 '개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구조 자체가 아름다움이며, 인격을 넘어선 '법' […]
균열과 구조 사이에서 - 폰타나와 스텔라를 바라보는 신체의 위치에서 바라보기
예술을 바라볼 때 우리는 종종 '호불호'나 '이해 여부'로 평가하려 한다. 하지만 아주 드물게 **"거부할 수 없이 흔들리는 작품"**을 만나게 된다. 그것은 이성을 넘어선 불쾌함도, 경외심도 아니다. 좀 더 육체적이고, 좀 더 원초적인 - '만지면 깨질 것 같은 것'을 만진 느낌. 프랭크 스텔라와 루치오 폰타나. 이 두 사람의 작품을 앞에 두면 항상 몸이 들썩인다. 폰타나 - […]
Less is more를 넘어서 - 무심탈력™이 서는 곳
'Less is more(적은 것이 더 풍요롭다)'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조용히 불이 켜지는 것을 느꼈다. 건축가 미스 반 데어 로에( )의 이 말은 내 안의 '아름다움'의 기준을 확실히 결정지었다. 군더더기를 없애고, 선을 다듬고, 침묵 속에 본질을 담는다. 그것은 무술의 동작에도, 그림의 여백에도, 인간 신체의 '그냥 서 있는' 행위에도 너무나도 아름답게 […]
'최소 약속의 몸체' - 세부 사항을 정돈하기 전에 우리가 진정으로 찾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세세한 부분, 전혀 보지 못했구나." 그런 식으로 집사람은 나를 비웃는다. 물론, 그렇게 말한다면 그럴 수도 있다.나사 하나가 빠져도 눈치채지 못한다.서랍의 가장자리가 열려 있어도 거기서 의미를 찾을 수 없다.나는 예전부터 '전체 흐름'에만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저한테는 그게 단점이 아니에요. 오히려 전체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최소공약수'를 찾는 것이 내 삶의 축이라고 생각한다. '최소공약수'는 핵심이자 […]










